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
[윌리엄 사우더 지음,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2014년 4월 14일, 50주기를 기념하여 새로 쓴 환경운동의 어머니 ‘레이첼 카슨’의 전기. 이 겸손한 생물학자가 우리와 자연 세계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네 번째 저작 『침묵의 봄』을 통해서였다. 1962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대중을 충격 속에 빠뜨렸고, 화학 회사가 카슨에 대한 위협적 공격을 그치지 않았음에도 정부의 조치를 이끌어냈다. 꼼꼼한 조사 작업을 거쳐 격조 있게 써내려간 이 책를 읽어보면 카슨이 본시 수줍은 성격이지만 자기 일에서만큼은 열정적이었으며, 그녀를 열렬히 환호한 문단 세계보다는 자연 세계에 머물 때 한결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리엄 사우더의 참신하면서도 비범한 전기적 접근은 20세기의 위대한 개혁가 가운데 한 사람인 레이첼 카슨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 한다.
자연의 일원이 된 ‘작가로서의 레이첼 카슨’에 주목하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교수신문 (2014. 5. 5)]
레이첼 카슨은 여전히 환경운동의 아이콘이다. 20세기의 여인은 자연의 경고에 귀 기울이라고 지금의 우리에게 외친다. 최근 윌리엄 사우더가 쓴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가 지난 4월 국내에 번역됐다 (<교수신문> 제714호 「그의 주제 의식은 왜 거듭 호명되는 것일까」, 2014년 1월 1일자 참조). 옮긴이 김홍옥은 “환경주의 시대가 된 지금,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 아니라 ‘자연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게 책의 핵심이라고 적었다.
레이첼 카슨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전기가 나와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서술 방식에서 조금 차이를 보였다. 우선 레이첼 카슨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그 역사를 입체적으로 오목조목 설명한다. 그 가운데 카슨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을 드러내면서, 카슨의 삶을 조금 더 중점적으로 부각시켰다. 더불어 그녀가 주위 환경과 어떤 방법으로 손을 잡고, 작가적 삶을 이루어 성장해 나갔는지 보여준다. 책은 ‘수중세계’와 ‘침묵의 봄’ 두 장으로 나뉜다. 카슨은 평생에 걸쳐 유명한 4권의 책을 남겼다. 바다와 관련된 책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 그리고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침묵의 봄』이 있다.
카슨은 학창시절 아버지 땅을 담보로 학비를 보충해가며 공부를 할 정도로 학구파였다. 펜실베이니아여대에서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어느 날 밤, 카슨은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록슬리 홀」을 읽고 바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카슨은 20대부터 수많은 잡지사와 신문사에 야생동식물에 관한 여러 주제의 글을 기고했다. 카슨은 1937년 9월호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에 「해저」를 투고했다. 카슨은 심해바닥의 상당 부분이 무수히 많은 플랑크톤 유기체의 시체로 이뤄져 있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태어남이라는 끝없는 순환이 이어지는 세계라며, 독자들에게 바다의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그녀는 수영을 잘 못했지만 항상 심해에 관심이 많았고, 바다 곁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카슨이 처음 집필한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2천부 정도도 팔리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자신이 한동안은 책을 쓰지 못하리라 여겼다.
첫 집필 저작, 2천부도 팔리지 못해
카슨은 『나의 마음 이야기』를 쓴 작가 제프리스를 존경했다. 제프리스는 헨리 윌리엄슨의 문체에 영향을 줬고, 그 사고는 카슨에게 이어졌다. 카슨은 앞으로 살면서 읽어야 할 책이 지금까지 읽은 책들보다 많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또한 어떤 책 하나를 읽기로 결정함으로써 다른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더불어 그녀는 원고 쓰는 일이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글을 썼고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대성공을 거뒀다. 책을 읽은 이들은 모두 카슨의 서정적인 묘사력을 높이 평가했고, 시적이라고 표현했다.
이 후 카슨은 TV대본 작업과 여러 리뷰 기사 쓰기, 인터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카슨은 직장을 그만두고 해안가에 별장을 지어 그토록 갈망하던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막상 주어진 시간이 많아지자 자신이 오랫동안, 오직 글만 쓰고 다른 것은 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엄청난 구속임을 깨닫게 된다. 카슨은 해안에서 작가적 고독을 느꼈다. 이때 운명처럼 도로시라는 이웃을 만나 친구가 된다. 카슨은 “창조적인 작가의 영혼이 어떤 자양분들로 이뤄져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나와 내가 창조하려고 애쓰는 것까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느낌은 너무도 가슴 벅차다”고 토로했다. 도로시는 카슨에게 우정 이상의 존재로, 그녀에게 『우리를 둘러싼 바다』 초판을 한 권 보내줄 정도였다. 둘은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육체적 욕망을 넘어 낭만적 우정을 죽을 때까지 나눴다. 도로시와의 만남 속에서 카슨은 『바다의 가장자리』를 집필하고 또다시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카슨은 해저만큼 DDT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DDT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를 근절하는 데 도움을 줬다. 또한 DDT는 농업과 수많은 식품 서비스 산업, 임업, 가정용 곤충 방제에 쓰였다. 하지만 DDT는 탄소 원자 골격에 수소와 염소 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유기화합물로, 표면이나 토양에 지속적으로 남는다. 심지어 모기 방제에 필요한 1~2온스(1온스는 약 28그램)에도 먹이사슬이 교란될 정도다.
카슨이 살던 1950년대는 종자 개량, 새로운 식물의 이종 교배, 화학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한 작물생산의 증가를 주장하던 녹색혁명 시기였다. 방사성 핵종과 여러 살충제의 향연으로 보이지 않는 잔해들이 도처에 널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살충제의 위험성보다도 방사능 낙진을 더 두려워했다. 카슨은 이에 대한 자료들을 꾸준히 수집해 왔다. 카슨이 『침묵의 봄』을 집필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사람들이 살충제의 위험성에 대해 항의하곤 했다. 그러나 증거와 설득 부족으로 그러한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카슨은 이 때문에 책을 구상하면서 엄격한 증거를 수집했고, 후에 닥쳐올 기업의 공격과 반박에 대한 대응책도 함께 마련했다. 책 구상 초기부터 카슨은 방사능 낙진과 살충제 사용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살충제 사용에 대해서 카슨은 때론 소량으로 신중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유용하고 권장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집필 당시 어려움이 많았다. 독감, 십이지장궤양, 폐렴, 축농증, 여러 종양들이 발생해 많은 시간을 글을 쓰는데 집중 하지 못했다. 특히 책 제목을 ‘침묵의 봄’이라고 정하기 위해서도 오랜 시간을 숙고했다. 마침내 그녀는 강한 의지로 1962년 봄, 미국이 남태평양에서 핵폭발 실험을 재개하던 시기에 책을 출간했다.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오래된 바람
그녀는 살충제의 전면 사용금지를 주장하진 않았다. 다만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거주지에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과, 살충제의 판매와 사용에 따른 제약에 대한 강화를 강조했다. 『침묵의 봄』이 전 세계로 확산돼 가는 도중 그녀는 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녀는 화장돼 그토록 사랑하던 태반 속, 바다로 돌아갔다.
카슨은 “과학과 문학은 진리를 발견하고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결국에는 같다”고라 주장했다. 인간이 아니면 어떤 생명체도 우리 자신과 겨룰 완벽한 방법을 내놓을 수 없다.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은 결국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카슨은 망원경을 거꾸로 쓰고 우리 인간을 들여다본다면,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라고 세상을 향해 외쳤다. 인간은 시한폭탄을 품고 있어, 그것이 언제 터져 스스로를 파멸시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996년 『도둑맞은 미래』라는 책이 출판됐다. DDT와 같은 살충제들이 세포 안에 있는 특정 수용체에 들어붙어 쌓여간다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침묵의 봄』 속편으로 간주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과거부터 몸속에 농축됐던 살충제와 방사능 낙진에 대한 피해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과거의 행위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 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추진력을 지녔다.
카슨이 온갖 고통을 겪으며 책을 집필하고 육체적·정신적 고난을 당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식물 그리고 바다가 앞으로 겪게 될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