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수사학'과 만나 사회를 바꾸다
김재호 기자 (교수신문 2024. 5. 15)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 책 ‘침묵의 봄’
올해는 레이첼 카슨(1907∼1964)이 세상을 떠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확히 지난달 4월 14일이 카슨의 기일이었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DDT 등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 환경운동을 촉발시켰다. 지난달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는데, 이 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1962년 출간된 『침묵의 봄』은 출간 전 이미 4만 부가 선계약됐다. 그해 가을에만 60만 부가 팔린 초베스트셀러였다. 20세기 환경 분야 최고의 고전 중 고전인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출간됐다. 개정증보판은 ‘제2의 레이첼 카슨’으로 평가받는 샌드라 스타인그래버의 서문과 『침묵의 봄』 출간 이후 환경 관련 글, 연보 등을 추가했다. 특히 초판의 표지 색깔과 비슷한 녹색 톤으로 표지를 꾸몄다.
미국 컬럼비아대 생물학 강사인 스타인그래버는 “좁게 보면 『침묵의 봄』은 19가지 살충제의 독성학적 특성에 관한 책”이라며 “그중에는 알드린, 디엘드린, 엔드린, DDT, 린데인, 클로르데인, 헵타클로로 같은 물질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침묵의 봄』 출판 10년 후, DDT 사용은 미국에서 불법이 되었다”라며 “6개의 살충제가 차례로 하나씩 같은 운명을 맞이했고, 대부분이 사용 제약을 크게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스타인그래버는 『침묵의 봄』이 네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첫째, 아무도 허락한 적 없건만 우리는 모두 살충제라는 형태로 유독 화학물질에 원천적으로 오염되고 있다. 둘째, 살충제는 해충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셋째, 독성물질에 대한 동의 없는 노출의 경우, 대중은 적어도 자신들이 처한 위험을 알 권리가 있다. 넷째, 인간과 다른 생물종의 건강을 굳이 위험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노융희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지난날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신학계에서 받은 박해만큼이나 큰 공격을 미국 화학공업계로부터 받았고, 스토 여사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써서 노예해방을 이끈 만큼의 사회변혁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스토 여사와 비등하다고 하지만, 스토 여사의 경우는 이미 공론화한 노예제도를 문제로 삼아 국민적 양심에 호소한 데 비해 카슨 여사는 아무도 모르고, 따라서 증언해 줄 사람 하나 없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서 국론을 불러일으켜 사회제도를 변혁했다는 점에서 더 큰 찬사를 받았다.”
언어의 힘으로 환경보호국 창설 이끌어
“사진이나 SNS·팟캐스트 없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를 이끌었다.” <포브스>는 카슨 기일에 맞춰 「침묵과 경이로움: 레이첼 카슨과 언어의 힘」 기사를 공개했다. 『침묵의 봄』으로 인해 미국 환경보호국(EPA)가 창설됐다. EPA는 지난달 식수에서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학합물(PFAS)를 제거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환경 감시와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침묵의 봄』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 50권 중 유일한 환경 서적이다. <디스커버>가 발표하는 최고의 과학 도서에서 『침묵의 봄』은 16위에 올랐다. 스타인그래버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카슨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 학술지나 특정 분야에서만 증거를 수집한 것은 아니다. 약리학에서 야생생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백 건의 과학적 연구를 인용한다.”
이 책이 강력한 언어의 힘을 발휘한 건 카슨의 문학적 역량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비유가 그렇다. 미토콘드리아는 당을 ATP(아데노신 3인산)로 변환시키는 세포의 구성 요소다. ATP는 신체의 에너지로 통용(currency) 되는 화학적 성분이다. 카슨은 미토콘드리아를 “생명의 에너지를 촉발하는 수십억 개의 부드럽게 타오르는 작은 불”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 불이 바퀴처럼 순환하는 과정에 의해 촉발되며, DDT와 같이 위험하고 거의 연구되지 않은 화학 물질은 세포 생명의 “바퀴를 망가뜨리는 지렛대”라고 표현했다. 과학이 수사학적 언어에 의해 한층 도약하는 순간이다.
당신은 ‘침묵의 봄’을 읽어봤는가
아울러, 카슨은 실천윤리의 차원에서 직접 행동했다. 방송에 나가 인터뷰를 하며 문제를 설명했다. 또한 의회 청문회와 상원 소위원회에서 발언하는 등 사안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 때문에 거대 화학기업들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다.
요컨대, 카슨은 철저한 과학 연구와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실천이 융합된 전형적 인재다.
1952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앤 로는 “과학의 어떤 것도 소통·전달되지 않으면 사회에 가치가 없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누구나 『침묵의 봄』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이는 마치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와도 같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오는 27일은 ‘레이첼 카슨의 날’이다. 이날은 카슨의 생일을 기념하며 전 지구적 환경 운동의 중요성을 환기하고자 제정됐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에게 카슨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일 것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현재 직면하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