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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그리고 코로나19 (교수신문_2020 2 28)
작성자 MML 작성일 20-03-20 12:09 조회 5,031

- 장동석 출판평론가 - 교수신문 (2020 2 28)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57 Nobel Prize in Literature])'페스트 (La Peste [The Plague])'에 등장하는 말이다. 세상이 코로나19에 갇히면서, 어떤 이들은 확진자가 되어 괴롭고, 누군가는 감염되지 않으려고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마스크 하나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증상이 나타나지 않음에도 스스로 격리되어 감염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카뮈의 말을 조금 바꾸면 이럴 것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코로나19 환자거든요.” 하여,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도 없는 세상인 셈이다.


알제리 해안에 있는 프랑스의 도청 소재지인 ‘오랑 (Oran)’은 작고 평온한 도시였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진료실을 나오다가 처음 쥐를 발견한 것은 4월 16일 아침. 그러나 며칠 사이 사태는 악화되면서 “죽은 쥐의 수가 갈수록 늘어났고, 수거되는 양도 매일 아침 더 많아졌다.” 이내 사람들에게도 증상이 나타났다. 종기가 나는 사람이 있었고,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쥐가 발견되고 보름 정도 지나 아파트 수위가 이상 증세를 보이며 죽었다. 이내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사지를 비틀”면서 죽어갔다. 작은 도시 오랑은 서서히 공포에 짓눌렸다. 페스트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열병이 페스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사망자가 30명 선을 넘자 중앙정부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라는 지침을 내렸다. 의사 리외도 그 지침의 피해자가 되었다. 병을 앓던 아내가 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한 달 전 떠났고, 연락은 두절되었다. 오가는 길이 막혔지만 사람들은 비교적 덤덤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고, 카페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에게 페스트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것처럼 언젠가는 떠날 불쾌한 방문객에 불과”했다. 기자 랑베르는 막힌 도시를 뚫고 나갈 방도만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 행복을 되찾는 것만이 랑베르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어쩌면 코로나19에 갇힌 우리 모두의 모습이 랑베르의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세상이 험악할 때 종교는,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별개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한다. 하지만 파늘루 신부의 예언자적 사명은 다소 편협하다. 파늘루 신부의 강론 중 한 대목은 이렇다. "루시퍼처럼 아름답고 악 그 자체처럼 찬란한 페스트의 천사가 여러분의 집 지붕 위에 서서, 오른손으로는 붉은 창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왼손으로는 여러분의 집 문을 향하고 창은 나무 대문을 두드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이다. 이 재앙은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는 것. 그나마 다행은 재앙이 인간에게 “길을 제시”한다는 파늘루 신부의 말이다. 그것은 사악함을 버리고 신에게 돌아서라는 말이겠지만, 넓혀보면 재앙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인간의 생을 은유한다.


<페스트>에서 카뮈의 인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의사 리외와 여행객 타루다. 리외는 열병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베일에 가려진 인물인 타루는 리외를 찾아가 페스트와 싸울 ‘자원보건대’를 조직하겠다며 계획을 의논한다. 타루는 “인구 과밀 지역에서 예방 사업에 주력”하면서 “영웅심을 침이 마를 정도로 과도하게 찬양하지는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런 타루에게 리외는 속마음을 터놓고 싶은 마음마저 인다. 리외와 타루는 비록 저마다의 방식이지만, 페스트를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투쟁하는 인간을 지향한 카뮈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랑베르와 파늘루의 방식 또한 고난을 극복하려는 이의 마음자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전쟁이 남긴 상흔을 고발한 소설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갇힌 오늘의 세상을 보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카뮈가 20세기 중반을 살며 21세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도 언젠가는 물러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또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재앙과 재난에 대한 백서가 만들어지면 모를까, 그때까지는 <페스트>와 같은 작품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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