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국가로부터 해방되면, 인류의 삶은 더 나아질까?
양도웅 [교수신문 (2018. 4. 9)]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과학기술로 달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관계를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헌법재판연구원(원장 석인선)과 한국과학기술법학회가 지난 5일 대한변협회관에 모여 「과학기술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헌법에 직접적으로 명시되기 시작한 건 1972년 유신헌법 때였다. 그 전까지는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의무가 헌법에 간접적으로 표현된 정도였다. 국민경제(목적)와 과학기술의(수단) 관계는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에도 변함없이 계승됐다. 하지만 1987년과는 현격하게 달라진 현재의 과학기술을 고려해, 국민경제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달리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등장한 것이다.
- 유통기한이 다 된 헌법 제127조
손경한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사회로 진행된 학술대회의 첫 발표는 김일환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과학기술에 관한 헌법조항의 의의와 역할」이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모든 국가는 자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사활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 수준의 격차를 활용해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국가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지원하는 경우는 많으나 그러한 국가들이 모두 헌법에서 과학기술 발전에 관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처럼 헌법에 과학기술의 목적을 국가발전으로 명시해놓은 국가는 흔치 않다. 김 교수는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경우, 국가가 과학기술 발전을 앞장서서 독려하기보다는 연구자의 권리 보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며 “독일의 경우에도 연방과 주의 권한 배분을 통해 간접적인 지원을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국가가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모델을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중국과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출발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이며, 지난달 발표된 정부 발의 개헌안 제134조 제1항은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기초 학문을 장려하고 과학기술을 혁신하며 정보와 인력을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이다.
국민경제 발전에 종속돼 응용과학기술 중심으로만 과학기술이 발전해 왔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 하지만 김 교수는 “대표적 SNS 회사인 페이스북의 최근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변화된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그 점에 주목하지 않아 아쉽다”고 평했다. 페이스북은 최근, 보호해야 할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영국의 한 정치컨설팅업체에 유출시킨 사실이 적발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유출된 사용자들의 규모가 약 8천700만명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은 삶을 편리하게도 만들지만 불편하게도 만든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사례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김 교수는 현행 헌법 제127조가 “국가는 인간존엄을 바탕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통신 및 인력의 개발에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여야 한다”로 개정될 것을 제안했다. “조성”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기술계가 연구주제를 선정하는 데 전보다 확대된 자유를 준 것이며, 국가의 역할을 직접적인 지원에서 간접적인 지원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 국가경제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는?
이어서 「과학기술과 입법, 행정, 사법의 역할」을 발표한 김연식 성신여대 교수(법학과)도 김일환 교수와 유사한 입장을 견지했다. 김연식 교수는 “현행 헌법 제127조가 일정한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며,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뒤, “국가 규제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학 영역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정책의 실효성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며 “이러한 배경에서 과학 영역에서 국가의 후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에 참여한 최지선 변호사도 “그러나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고착되는 순간 과학기술의 무한한 잠재적 활용성을 스스로 축소하는 일이 된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해 50년 넘게 과학기술의 목적이었던 국가 발전을 소거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의 발전만을 목표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김연식 교수는 “하지만 국가가 후퇴한 자리를 경제 영역이 차지하면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국가발전 논리에 종속돼 있던 과학기술이,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종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일환 교수가 첫 번째 발표에서 언급했던 페이스북 사례가 이와 무관치 않다. 과학기술이 언제든 私的으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헌법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이와 함께 김연식 교수는 “과학기술이 과학 자체의 합리성과 작동 구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영역의 합리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며 “과학계 내부에서는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가 자행될 우려가 있고, 과학계 외부의 환경·윤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의 발전만을 목표로 상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문제가 발생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국가는 과학 영역의 자율적 구조를 반영하는 사회 규범을 체계화 하고,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맹목적 추구가 다른 사회 체계를 파괴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다맥락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가는 ‘룰 메이커’가 될 수는 있지만 ‘게임 체인저’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론에 참여한 최 변호사는 과학기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과학기술도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가 다 함께 가난했을 때는 경제발전이 중요했기 때문에 경제를 위해 과학기술이 존재해야 했지만, 경제발전으로 가난이 일정 부분 해결된 상황에서 과학기술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도화지라고 생각한다. 헌법에서 색깔을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학기술이 자유롭게 널리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기술이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는 있지만, 과학기술 또한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 셈이다. 국민경제를 넘어선 보다 보편적인 목적이 과학기술에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