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lligent Thought"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김명주 옮김; 바다출판사)
- 서문: 문 앞에 서 있는 야만 - 존 브록만
- 지적 설계는 왜 과학이론이 아닌가? - 제리 코인
- 반과학에 대처하는 과학자들의 자세 - 레너드 서스킨드
- 지적 설계론자들은 어떻게 대중을 속이는가? - 대니얼 데닛
- 의식은 다윈주의의 아킬레스건인가? - 니콜라스 험프리
- 나는 어떻게 인류의 진화 증거를 발견하는가? - 팀 화이트
- 물에서 뭍으로의 ‘위대한’ 이행 - 닐 슈빈
- 만약 지적 설계자가 외계인이라면 - 리처드 도킨스
- 다윈은 어떻게 창조론자에서 진화론자로 변신했는가? - 프랭크 설로웨이
- 종교적 믿음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 스콧 애트런
- 우리의 도덕 감각 역시 진화한다 - 스티븐 핑커
- 우주의 자연법칙도 진화의 결과다 - 리 스몰린
- 지적 설계에 대한 강력한 반증: 생물의 자기 조직화 - 스튜어트 카우프만
- 아무 도움 없이 생명을 진화시키는 우주 컴퓨터 - 세스 로이드
- 논쟁의 뿌리: 오해를 낳는 용어들 - 리사 랜들
- 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 마크 하우저
- 생태-진화 중심의 대안 교육을 고민하자 - 스콧 샘슨
악수에 남은 진화의 흔적…“지적 설계론 지지 배후는?”
윤상민 기자 (교수신문 2017 9 25)
과학과 신앙. 둘 사이의 전쟁은 오래된 이야기다. 때로는 격렬히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 계속됐던 이 싸움은 종교가 맹위를 떨쳤던 중세 (과학에게는 암흑의 시대)를 지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현재 과학이 점차 우위를 차지하는 형세다. 하지만 종교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창조론을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창조과학이 그것. 그간 무대응으로 일관해오던 한국 과학계는 ... 창조과학에 대한 입장을 가시화했다. 최근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걸까.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대니얼 데닛, 레너드 서스킨드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16인의 지성을 통해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이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하는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을 가상대화로 재구성해봤다.
레너드 서스킨드:
2년 전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수업을 할 때 기독교도 학생 두 명과 토론을 한 적이 있어요. 왜 다윈주의 메커니즘이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죠. 신의 인도가 없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빛 감지 세포에서 실제 눈으로 변해가는 그럴듯한 진화적 이행단계를 제시했죠. 그러자 이들은 또 다른 예를 들기 시작했고 전 그만 현대과학이 모든 것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해버렸어요. 결과는 뻔했죠. 나는 초강력 해머로 그들의 핫 버튼을 때린 거예요.
대니엘 데닛:
눈의 발달은 지적 설계론자들이 진화론에 대한 반론으로 가장 자주 꺼내드는 사례 가운데 하나죠. 그토록 놀라운 공학적 설계는 오직 지적 설계자밖에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약 5억 년 전 다세포 동물을 진화시킨 시각 없는 박테리아에서부터 있던 전임 유전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시각에 가담하는 유전자들의 역사와 그 유전자들의 작동법을 알아내고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
든든한 돈줄을 쥐고 있는 지적 설계 비밀조직이 꾸며낸 수많은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그들이 말하는 설계자는 아브라함이 모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불특정한 지적 존재라는 말이에요. 그 말대로라면 설계자는 외계인일 수도 있죠. 지적 설계론자들은 오직 한 가지 논증만을 갖고 있는데 1. 눈은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다 2. 그러므로 눈은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 없다 3. 그러므로 눈은 설계된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죠. 엄밀히 말해 우리가 구태여 1, 2를 반박할 필요는 없어요. 1, 2를 어떻게든 인정한다고 쳐도 3은 구제불능이기 때문이에요.
스튜어트 A. 카우프만:
지적 설계는 아무리 잘 봐줘도 과학이라 하기 힘들고, 과학으로 본다 해도 지금까지 쌓인 증거들은 그 이론을 강하게 거스른다고 봅니다. 따라서 교실에서 지적 설계를 다윈주의 진화의 훌륭한 대안으로 가르치면 절대 안 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거죠. 종교적 우파가 지적 설계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만 봐도 그래요. 그들이 밝히지 않는 그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뻔하죠.
대니얼 데닛:
과학은 매우 두터운 신망을 갖고 있고 영향력이 큰 제도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죠. 한 연구자의 주장이 동료 검토에 맡겨지기 때문에 연구자는 비판자들의 비판에 대응을 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과학이라는 학문은 희망적 사고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거든요. 그런데 말이에요. 생물학자들이 지적 설계가 과학이라는 주장들에 대해 즉각 날카로운 반론을 펼쳤지만, 이런 노골적인 비난은 엘리트 과학계가 약자를 질식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줬어요. 그것도 선하고 믿음이 가는 약자, 문자 그대로 ‘천사들의 편에 있는’ 이론을 말이죠.
레너드 서스킨드:
그런 정도의 인상을 넘어서서 저는 최근에 불고 있는 반과학 열풍의 원인이 뭘까 고민해봤어요. 어느 정도는 문화전쟁의 패배자들 (여자들을 부엌에 가두고, 흑인들을 버스 뒷자리로 몰고, 동성애자들을 벽장 속에 감추어두려 했던 사람들)이 그동안 느꼈던 분노, 두려움, 좌절, 모욕 같은 감정들이 낳은 결과라고 봅니다. 하지만 최근 반과학 열풍은 선동자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조장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캔자스에서 위험에 처한 건 비단 생물교과서만이 아니거든요. 과학-정부-정치의 삼각관계를 오랫동안 관찰해 온 제게는 과학계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의제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랭크 J. 설로웨이:
21세기를 사는 창조론자들도 진화론의 아버지인 다윈에 대해 좀 더 알았으면 해요. 다윈이 창조론자였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요? 다윈은 갈라파고스를 향해 항해를 하는 동안 창조론을 따랐어요. 하지만 조사를 더 깊이하면 할수록 창조론이 눈앞의 생물학적·고생물학적 증거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더욱 절실히 깨달았죠. 결국 다윈은 창조론을 부정했고 결국에는 더 나은 이론을 세웠어요. 그게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인 거죠.
닐 슈빈:
지적설계를 믿는 사람들은 인류의 조상이 물속에 살던 물고기에서 뭍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죠. 인간은 창조 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믿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단순해요. 3억7천만 년 전 데본기에 일어난, 물에서 사는 동물에서 땅에서 사는 동물로의 이행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별일이 아니란 거예요. 이 이행의 영향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거든요. 암석에, 전 세계의 연못과 바다에서 심지어 악수할 때도요. 우리가 악수할 때 흔드는 구조들 (어깨, 팔꿈치, 손목)은 물고기에서 처음 출현한거고, 꼭 움켜쥐는 손은 변형된 물고기 지느러미로 만들어져 있거든요.
스티븐 핑커:
진화를 가르치는 걸 주저하는 사람들이 비단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들 대다수의 특징은 얼룩말과 민들레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최고의 이론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죠. 이 사람들은 의미와 도덕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들은 진화론이 윤리의 토대를 좀 먹는다고 믿는데, 이들에게 윤리란 신의 목적을 받아들이는 것, 신의 법칙을 따르는 것, 그럼으로써 내세에 신의 보복을 달게 받는 것이죠. 이 사람들의 슬로건은 간단해요. “아이들에게 그들이 동물이라고 가르치면, 아이들은 동물처럼 행동할 것이다.” 저는 이런 식의 사고가 잘못됐다고 봐요. 과학이 우리에게 도덕 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처럼 종교도 마찬가지에요. 우리의 도덕 감각 역시 진화하거든요.
마크 D. 하우저:
학교에서 이런 논쟁을 쉬쉬하며 배울 아이들을 생각해보세요. 교육보다 중요한 건 없죠. 저는 논쟁보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요. 각 과학 과목마다 삼두마차를 만들자는 건데요. 보완하는 두 과목 가운데 하나는 역사를 다루고 또 하나는 과학과 예술, 인문학의 학제간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에요. 한 섹션에서는 진화생물학을 배우고, 두 번째 섹션에서는 진화생물학의 역사를 다루는 거죠. 다윈 이전과 이후 굴드 같은 학자의 논의가 포함되겠죠. 1860년 새뮤얼 윌버포스주교와 토머스 헨리 헉슬리 논쟁과 오늘날의 지적 설계론자의 논쟁까지요. 세 번째 섹션은 진화생물학의 통찰이 음악, 미술, 도덕성에 대한 어떤 흥미로운 발견들을 이끌어냈는지 다루면 어떨까요? 그 학생들은 분명 행운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