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 혁신의 길_미래교육 패러다임"
손동현 교수 (2017년 4월 3일자 교수신문)
인간의 욕구 내용 및 욕구충족 방식이 달라지고,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한 융복합적 산업이 이를 실현하는 오늘의 ‘지식기반사회’에서,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범위가 전 지구로 확장되는 세계화의 시대에, 지식의 산출과 유통을 담당하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서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교육은 이제 지식 습득 및 소비의 교육에서 지식창출 능력의 교육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제 교육은 기성 지식의 전달-전수가 아니라, 지식을 스스로 창출하고, 응용하고, 적응할 수 있는 기초능력을 길러주는 일이어야 한다.
엄청난 양의 정보 가운데서 적실성 있는 유용한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의 능력, 새로운 정보를 산출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의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어진 사태 속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는 폭넓고 깊이 있는 종합적 사고 능력, 즉 통찰력 등을 길러주어야 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사유내용을 공동체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의사소통능력을 필히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적 능력을 포함해 새로운 문화지형 전체에 부응하는 지성적 자질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더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1, 파편화된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유기적으로 연결해 줌으로써 통일적인 의미체계를 구성해낼 수 있는 ‘지적 연결지평’과 심도 있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2, 각 분과 과학들의 특정 대상에 대한 전문지식들을 유기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융복합적 사유 능력이 요구된다. 창의성은 바로 이 융복합적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3,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일관성 있는 태도를 취해 자신과 공동체의 상호적 윈-윈 관계를 견지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가 요구된다.
4, 새로운 유목적 사회질서를 맞으면서, 사회적 역사적 특수성과 문화의 보편적 원리를 양립시켜 문화세계의 실질적 균형을 견지하게 하고 문화창조의 변증법적 과정을 수행해 낼 수 있는 역사의식과 공동체의식이 필요하다.
첫째·둘째항은 앞서 언급한 비판적 창의적 종합적 사고 능력과 통찰력이고, 셋째항은 도덕적 가치관이며, 넷째항은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다. 이렇게 볼 때, 글로벌화된 21세기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지성적 자질은 다름 아닌 심화된 ‘교양’ 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교양’이란 무엇보다도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식견과 태도, 특히 인간적인 삶 자체를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지적 자세와 그 성찰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려는 의지적 자세를 포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토대로 총체적 종합적 사유를 함으로써 세분화된 분야들의 위상을 전체 속에서 혜량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포함하며
2) 이러한 지적 탐색의 성과를 바탕으로 실천적 행위를 위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자기 형성 및 자기 결정의 주체적 활동을 수행하는 도덕적 의지를 精練하며 나아가
3) 정서적 감응도 내면화시켜 ‘이성과 감성을 넘나드는’ 능력도 구사하는 힘을 갖는 것이다.
‘총합일반교육’으로서 교양교육 강조
글로벌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이 세 가지 지성적 자질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글로벌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지적 능력’이란 단순히 기성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스스로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 즉 비판적 창의적 사고의 능력이다. 이는 결국 주어진 사태 속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데, 정보사회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는 대체로 여러 지식분야에 걸쳐 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따라서 문제연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총체적 조망 능력이 없으면 부분에 관한 전문지식도 무력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각 전문분야들의 지식을 폭넓고 깊이 있는 안목 아래서 조망하고 연결시켜 주는 ‘지적 연결지평’이 요구되는 것이다.
의지란 모든 활동의 동인이다. ‘욕구-믿음-행동 (Desire-Belief-Action)’이라는 도식은 오늘날 거의 모든 심리철학자들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원용하는 분석틀이다. 여기서도 욕구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의지가 없으면 인간에게는 자발적 행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의지의 발동이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통로를 거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원천적 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사회에서 특별히 문제되는 것이 정의적 작용과 지적 작용의 융합과 호환이다. 디지털 방식이란 바이너리 코드를 이용해 각종의 정보를 그 질적 성격에 구애받지 않고 수학적으로 연산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질적 성격이란 감각적 지각의 대상으로 우리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이고, 바이너리 코드로 처리하는 수학적인 연산은 정밀한 사고 활동이다. 따라서 이 두 영역을 넘나들 수 있기 위해서는 정서적 감응능력과 합리적 사고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며, 이 둘이 함께 협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유와 감각의 호환기술은 이제 감각내용의 논리화, 사유내용의 감각화를 수행함으로써 합리성의 문명을 용해시키고 그 자리에 초합리성의 문화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지적 지형은 한마디로 말해 우리에게 합리적인 과학적 수학적 사유의 능력뿐 아니라 예술적 감수성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분과전문교육에서 '총합일반교육'으로
이상과 같은 세 가지 능력 및 자질의 함양은 곧 대학 고등교육의 필수 사항이다. 이제 대학교육은 분과 전문교육에서 총합 일반교육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함양해야 할 지적 능력들 가운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세분화된 분야들의 위상을 전체 속에서 가늠할 수 있는 총체적 종합적 사유의 능력이다. 정보사회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문제는 대체로 여러 지식분야에 걸쳐 있는 복합적인 문제여서 이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능력이 없으면 부분에 관한 전문지식도 무력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분업, 분화가 생산성을 높이던 산업화 시대와 달리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이 진행되고 있고 여기에 여러 영역의 지식과 능력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종래의 통념에 따르면, 대학에서의 학업은 전문분야의 고급지식을 얻는 데 있다. 따라서 각 전공 학과에서는 자과의 전공교육에만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제 고등교육의 필수 사항으로 새로이 확인되는 지성적 자질은 이러한 전공 학과 교육만으로는 함양하기 어렵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새 방향의 교육은 실은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과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을 통합한 전통적인 ‘교양교육’의 과제다. 본래의 이념 자체에 따르자면, 일반교육이란 특정의 전문적인 활동을 하는 직업인이기에 앞서 전인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이고, 자유교육이란 특정 목적에 수단으로서 봉사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래적 가치를 갖는 품성을 도야하고 자기목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양교육’의 본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전문지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스스로 창출해 적실성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넓은 사유의 지평과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선진 제국의 기성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이들을 따라잡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던 한국의 고등교육은 이제 새로운 문명기를 맞으며 커다란 선회의 원을 그리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가 됐다. 고전적인 ‘대학’의 이념이 무색해질만큼 대학에서도 직업교육이 중시되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긴 하지만, 그리고 대학 진학생이 같은 학령인구의 70%를 넘어 직업교육에 대한 수요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긴 하지만, 특정분야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직업지향적 전공교육을 위해서라도, 지적 연결지평을 확보해 주는 ‘총합일반교육’인 교양교육은 더 더욱 필요해진 것이 21세기 정보사회의 지적 지형이다. 무릇 기초학문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교양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각성이 널리 확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