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공작"
헬레나 크로닌 지음/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교수신문 2017. 02. 16.
- 진화론 발달의 역사 종횡무진 누비며 ‘논쟁 成果’ 집대성 -
150년 전, 다윈과 월리스가 공동으로 진화이론을 발표했을 때, 학계에는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다윈 이론은 ‘한 종이 어떻게 등장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를 ‘자연선택’이라는 기제를 통해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이 간결성과 포괄성은 다윈 이론이 지닌 미덕이지만 그만큼 많은 오해를 낳고 반감을 일으켰으며, 종교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도전을 불러왔다.
이 도전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다윈 이론의 공동 주창자인 다윈과 월리스는 누구보다 가까운 동지이면서도 때로는 타협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기도 했고, 과학 외부의 것들이 과학 내로 난입해 하나의 사상과 이론이 발전하는 길을 더디게 가로막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유전학의 발전에 힘입어 그동안 설명할 수 없었던 난제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기도 했다.
헬레나 크로닌의 『개미와 공작』은 다윈 이론이 이러한 도전을 맞닥뜨리며, 수많은 논쟁과 연구를 거쳐 발전해온 과정을 치밀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
개체중심적 사고에서 유전자 중심 사고로
이 책은 크게 3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인 ‘다윈주의, 그 경쟁자들과 배교자들’은 다윈과 월리스를 비롯해, 존 메이너드 스미스와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이 이론의 주창자부터 논쟁과 발전에 관여하고 기여했던 수많은 학자들의 주장들을 풀어내면서 한 때 다윈주의의 경쟁자라 불렸던 이론들을 소개하고, 매 논쟁에서 중심이 됐던 이슈들을 풀어 설명한다.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을 적응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명체들이 보이는 엄청난 다양성과 그 가운데 드러나는 유사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선택은 어디에 작용하는가; 종, 개체, 유전자인가’, ‘자연선택으로 생명체의 구조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연의 산물인가’, ‘적응이란 무엇인가’ 등등. 저자는 진화이론이 발달해온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여러 주장들 사이의 차이와 유사점을 드러내고 논쟁을 통해 도달하게 된 성과를 집대성한다. 이 논쟁들을 통해서 학자들은 하나의 형질을 적응적으로 설명할 때 그 형질이 지닌 이점 뿐만 아니라 비용까지도 고려하게 됐으며, 생존, 번식, 선택의 과정을 논의할 때 개체 중심적인 사고에서 탈피해 유전자 중심적인 사고로 전환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설명처럼, ‘자연선택이 얼마나 지략적이고 미묘한 책략가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파트에서는 ‘개미’와 ‘공작’으로 대변되는 다윈이론의 가장 큰 난제였던 ‘이타주의’와 ‘성선택’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다. 공작 꼬리의 화려한 장식은 왜 진화하게 됐을까? 많은 동물들이 생존에는 하등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아니 오히려 보유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게 틀림없는 화려한 색채와 모양, 과시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런 특징들은 왜 암수 중 어느 한쪽 성에만 치우쳐 나타날까? 한 때 이 문제는 다윈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다윈은 이 난관을 해결할 카드로 ‘성선택’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성선택은 이 특징들이 짝짓기 시 상대 성 (주로 암컷)이 선호하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그는 성선택을 논의하며 매우 "미학적"인 관점을 택했는데, 바로 이 장식적인 형질들이 ‘그저 (상대 성별이 보기에) 아름답기 때문에’ 진화하게 됐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월리스는 이런 특징들이 대부분 생존에 도움이 되며, 따라서 기존의 자연선택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성선택은 작용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극히 미미한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암컷이 어떤 선택권을 행사한다는 생각이 그를 비롯한 당시 많은 학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선택을 둘러싸고 다윈과 월리스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고 오랫동안 이 주제는 논의되지 않은 채 묻혀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다시 열렬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는데 추천사에 적혀 있듯이 이런 변화가 일어난 데는 여성운동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본다. 관련 연구들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성선택은 자연선택과 함께 중요한 진화의 동인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 세부적인 원리는 실험을 통해 입증돼야 할 부분들이 아직 많지만 현재 성선택은 가장 활발히 다뤄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성선택은 훨씬 더 많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다윈의 확신이 실현되기까지 1세기 이상이 걸렸다.
관점 바꾸면 생물들의 이타심 새롭게 해석돼
많은 사람들이 자연선택 하면 피에 물든 이빨과 손톱,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양육강식의 세계, 이기적인 개체가 득세하는 잔인한 세상을 떠올린다. 자연선택을 그렇게 이해하면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귀한 행동이 자연계에서 생각보다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부모와 형제를 위해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둥지에서 가족들을 돌보는 일꾼 개미의 이타심은 이런 자기희생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들의 존재는 고전 다윈주의에서는 상당한 문제였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대상이 되는 주체를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로 바꿔 생각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불임을 자처한 일꾼 개미의 유전자는 부모와 형제의 몸속에 있는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촉진하고 있는 중이다. 관점을 바꾸면 그동안 납득되지 않던 생물들의 이타심이 새롭게 해석된다.
다윈은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에서 인간이 지닌 "도덕성"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도덕성’이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라고 여겼던 학자들은 둘 사이를 연결시키려는 그의 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미학적인 취향’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다윈주의를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들도 예술, 도덕, 종교 등 언뜻 인간만의 전유물로 보이는 분야에 동일한 진화 원리를 적용하길 꺼렸고 그 해답을 찾아 다시 초월적인 존재에게 의지했다. 다윈과 월리스의 입장도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크게 갈렸다.
오늘날 학자들은 동물의 구조와 형태, 섭식 행동 뿐만 아니라 사랑과 질투, 도덕심 같은 인간의 심리와 정치와 경제 같은 사회구조 까지 진화의 원리를 통해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학문간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과 이해, 즉 통섭이 중요해진다. 저자는 다윈주의의 오랜 논쟁이 도달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성선택과 이타심의 문제를 깊이 있게 설명한 뒤, 앞으로 해결해야 될 난제들을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다윈주의의 새로운 혁명들이 이 문제들에 빛을 던져주길 기대하면서..